글 :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 “신영복은 통혁당에 가입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는 일간지 보도 후 5大 공안사건 실체 공개
⊙ ‘빨치산’ 박현채의 가르침 받고 사회주의자 돼… 신영복, 박성준, 김수행 등과 긴밀한 관계
⊙ “ 박정희 정권 당시 수사기관의 조사 발표내용은 대부분 사실… 조작 아니라 실존”
安秉直
⊙ 75세.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同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학회장, 일본 후쿠이현립대 대학원 특임교수,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등 역임.
⊙ 現 서울대 명예교수,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장, 경기도실학박물관 관장.
⊙ 저서: 《한국경제성장사-예비적고찰》 《대한민국 기로에 서다》 등.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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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와의 인터뷰를 게재한 《중앙일보》. 안병직 교수는 이 기사를 본 후 자신의 비공개 증언록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
▣ 안병직 교수가 증언한 5대 좌익 사건 [1차 인혁당 사건] 1964년 8월 14일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이라는 지하조직이 국가 전복을 기도해 관련자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외국군 철수’와 ‘남북 서신 문화경제교류를 통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북한 노동당 강령을 토대로 1962년 1월에 만들어져 1964년 한일회담반대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하려 했다. 13명이 기소돼 도예종, 양춘우, 박현채에게 징역이 선고됐다. [통혁당 사건] 통일혁명당은 ‘무력적화 통일’을 목적으로 김종태, 이문규의 주도하에 1967년 조직돼 활동하다 이듬해 158명이 검거되며 실체가 드러났다. 언론인과 공무원이 포함됐고, 당수였던 김종태는 4차례 월북해 김일성을 만나는 등 간첩 교육을 받고 공작 자금을 받아와 조직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2차 인혁당 사건] 1974년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민청학련을 조사하던 중정은 배후에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는 발표와 함께 240명을 검거했다. 구속된 23명 중 도예종 등 8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 확정 후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돼 논란이 됐고,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남민전 사건] 반유신, 민족해방을 목표로 1976년 이재문, 신향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비밀단체. 북한과 연계 도모에 실패하자 무장강도 행각을 벌였다. 1979년 공안기관에 적발돼 84명의 조직원이 검거됐다. 2006년 정부 민주화보상위는 최석진 등 38명을 “민주화를 위해 남민전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김정강그룹 사건] 학생운동의 주요 리더였던 김정강을 중심으로 지하에서 활동한 이념운동 모임으로, 1980년에 검거됐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이룬다는 기치 아래 대학 재학 중이나 혹은 졸업 후에 공장노동자로 취업했다. 위장취업 1세대라 할 수 있으며, 관련자 진술 외에는 물증이 없어 대부분 감형 또는 석방됐다. <정리=河周希 月刊朝鮮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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